공지사항

1980년대 광주에서 총칼로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잡은 살인마 전두환은 독재권력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잔인함은 다 보여주었다. 이 때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시절이었으며 국민들 마음속에 민주화를 향한 열망조차도 꿈꾸기 힘든 아픔의 시기였다. 이 때 야당 당수 김영삼은 목숨을 건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다. 


독재자 전두환에게 부역한 원조 기레기들은 김영삼 단식에 관한 보도는 하지 않았다. 즉 일반 국민들은 전혀 모르는 외로운 단식 투쟁을 김영삼이 한 것이다.  전두환 독재권력과 싸우기 위해 김영삼이 가지고 있었던 유일한 힘이 곡기를 끊는 23일간의 단식이었다. 김영삼의 단식은 민주화 투쟁에 불을 붙여 결국 직선제 개헌을 이뤄내며 한국 민주화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박근혜, 최순실, 김기춘 공동정권(?) 아래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1950년 6.25 사변 이후 어린 생명을 가장 많이 잃은 비극적인 사건이다. 세월호 희생자 단원고 유민이 아빠 김영오 씨는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보장하는 특별법 제정을 위해 광화문 광장에서 40일간 단식을 하였고, 중태에 빠져 병원에 이송된 후에도 45일째 미음을 거부했다. 국가가 조직적으로 세월호 사고(?) 진상 규명을 방해하고 있는 상황에서 딸을 잃은 아빠가 딸이 어떻게 죽었는지 국가에게 그 이유만이라도 알게 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단식이었다.



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던 지난 2014년 8월19일부터 같은달 28일까지 열흘 간 단식 농성을 벌였다. 세월호참사 희생자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의 단식중단을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문 대통령은 김씨를 찾아 "더 이상 단식하는 것은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긴다"며 "대신 내가 단식을 하겠다"며 동조 단식에 들어갔다. 이후 김씨가 단식을 중단하자 "이제는 원래 제가 있어야 할 자리, 국회를 통해 특별법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 당의 대열로 돌아갈 것"이라며 단식 농성을 풀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단식중일 때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대선 후보까지 한 야당 중진 의원이 밖에서 단식을 하며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 재협상을 요구하는 박영선 의원을 가리켜 “협상의 기본은 커녕, 원칙과 도리조차 모르고 있다” “국회가 할 일은 방기한 채 오로지 세월호 특별법에만 매달리는 야당에 거듭 촉구한다”며 “재협상을 요구하기에 앞서 먼저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부추긴 데 대해 국민들 앞에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그당시 세월호 가족들의 아픔과 우리 국민이 느끼고 있는 슬픔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정치인이 김성태였다.



딸을 잃은 아빠의 아픔을 함께 한 문재인 씨의 단식에 비난을 한 적이 있는 김성태 씨가 뜬금없이 조건없는 '드루킹 특검' 수용을 촉구하며 노숙 단식을 시작했는데 단식 기간 9일 째 단식을 중단했다. 9일 동안 병원에 세번이나 실려간 요란한 단식이었다. 단식 장소를 방문한 당대표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진짜 단식인지 의문이 든다.


도대체 김 대표가 왜 단식을 했는지 우리 국민은 무척 궁금하다. 드루킹이 뭐길래 ? 그동안 호의호식한 보수 정당 정치인이 곡기를 끊을 정도의 절실한 사안인가.

국민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이런 단식쇼(?)까지 하는가. 그리고 단식을 했으면 그 단식에 따른 결과를 얻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남들도 하니 나도 그냥 단식이나 한번 해 볼까 ? 이게 아니지 않는가. 이정현 의원의 밀실 단식 6일과 어떤 다른 점이 있는지 설명이라도 좀 하고 단식을 중단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 예의 아닌가. 


따라서 정치인 단식의 의미를 희화한 역사에 길이 남을 단식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 우리 국민들 먹고 살기도 너무 힘든데 이제 제발 정신 좀 차려서 세비 받는 밥 값이라도 좀 해라 ! 정치가 어디 장난이니 ! 너희들 그러다 피 똥 싼다 !


(너희들 그러다 피 똥 싼다 !)